
섬광 In the Flicker
빛은 어떤 장면이 우리 눈에 닿기 전에 먼저 도달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보았다고 말할 때,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사실 그 형상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낸 빛이다.그러나 그 빛은 한결같지 않다. 섬광과 어두움이 빠르게 교차하는 점멸 속에서 우리는 자주 속는다. 하나를 둘로 보고, 분명히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지나치며,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도 한다. 무엇이 진짜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흐려진다. 섬광은 모든 형태를 잠시 드러내고는 곧 거두어 가지만, 바로 그 점멸의 틈에서 방향을 잃은 시대의 감각과, 끝내 붙잡히지 않은 채 흩어지는 장면들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다.
구두 Dress Shoes
구두는 몸을 지면과 단단히 연결시키는 장치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몸이 표현하려는 박자를 거꾸로 일러주고, 그것을 신고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다음 발을 내디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그러므로 구두가 끝내 알리는 것은, 우리의 움직임이 정처 없는 보행이 아니라 어떤 리듬을 향한 몸짓이라는 사실이다. 한 박자가 어긋나도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바닥과의 마찰을 견디며 다음 걸음을 디딜 수 있게 하는 가장 낮고도 단단한 받침. 구두는 그렇게, 흔들리는 삶 위에서도 끝내 다음 발을 내딛게 하는 몸의 리듬과 멈추지 않으려는 지속의 태도를 가능하게 한다.
칵테일 Cocktail
칵테일은 하나의 맛으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단맛과 쓴맛, 향과 알코올, 얼음이 녹으며 흐려지는 농도가 한 잔 안에서 서로를 밀어내고 동시에 붙잡는다. 달콤하지만 조금은 씁쓸하고, 즐거웠지만 어쩐지 피로한 감각. 그것은 뒤섞임 자체가 하나의 형식이 된 음료다.우리의 공존 또한 그러하다. 각자의 고독과 사정을 지닌 채 같은 공기와 리듬을 나누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곁을 지나고 부딪히고 때로는 함께 흔들린다. 그러므로 공존은 완전한 합일이라기보다 불완전한 혼합에 가깝다. 칵테일은 그렇게, 각기 다른 개별자들이 잠시 같은 장면을 만드는, 불완전하지만 선명한 공존의 순간을 한 잔 안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전시 서문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처음 마주한 것은 비릿한 땀 냄새와 눅눅한 열기였다. 발 아래 닿는 무대는 미끄러웠고, 나는 그 위로 빨려 들어갔다. 바깥의 시간은 무심할 만큼 곧게 흘렀고, 이 안에서의 시간은 더 이상 하나의 방향을 갖지 않았다. 흩어지고, 끊어졌다가 연결되며, 다르게 작동하고 있었다.머리 위로 조명이 날뛸 때 세상은 잠깐씩 형태를 잃었다. 그 짧은 순간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틀비틀 흔들렸다. 그것이 몸부림인지, 모든 긴장을 놓아버린 황홀의 춤인지 쉬이 분간할 수 없었다. 도취가 한데 뒤섞여 부유하는 동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조명과 음악이 꺼지지 않는 한 누구도 그 장면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시야가 흐려질 때, 본능처럼 허공을 더듬었고, 어둠 속에서 어떤 이의 어깨와 팔이 부딪혔다. 이 만남은 서로의 궤적 안에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부딪히고 빗나가기를 반복하며 우리의 몸은 필연적으로 얽혀들었다.갈증이 차올랐고, 입에는 단맛과 쓴맛이 함께 맴돌았다. 아름답다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고, 절망이라기엔 너무 깊게 밴 움직임에 우리는 끝내 몸을 멈추지 않았다. 미래가 약속되지 않는 무대 위에서도, 이 모든 것이 무의미에 가까워진다 해도, 계속해서 움직였다. 우리는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다.
The moment I opened the door. The first thing that met me was the raw, salty smell of sweat and the damp heat. The stage beneath my feet was slippery, and I was drawn into it. Outside, time moved forward with almost indifferent straightness, but inside, time no longer had a single direction. It scattered, broke apart, reconnected, and began to operate otherwise.When the lights flickered overhead, the world briefly lost its shape. In those fleeting moments, the figures of people appeared unsteady, staggering and swaying. It was difficult to tell whether this was the body writhing or a dance of ecstasy in which every tension had been released. As intoxication drifted through the air in a single, tangled mass, I could no longer tell where I was going or what kind of expression I was wearing.As long as the lights and music did not stop, no one seemed willing to stand still. When my vision blurred, I reached into the air as if by instinct. In the darkness, someone’s shoulder and arm brushed against mine. It felt like a way of confirming that we were still alive inside each other’s paths. As we collided, slipped past one another, and crossed again, our bodies inevitably wove themselves loosely together.Thirst rose in me, and a sweetness and bitterness lingered together in my mouth. Too harsh to be called beautiful, yet too deeply steeped in movement to be named despair, we did not stop our bodies in the end. Even on a stage where the future was not promised, even if all of this came close to meaninglessness, we continued to move. After all, we were those who could not help but dance.
전시 정보
포스터 디자인 진서영, 김은아, 신서영, 이경민
〈 전시 공간 〉
Main Exhibition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제1관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 94
홍익대학교 문헌관 4층2026.6.15. Mon – 2026.6.20. Sat
Mon - Fri. 11:00 - 19:00
Sat. 11:00 - 17:00
Performance Hall
한국문화예술센터 홍익대센터
아트앤디자인밸리 B201-2퍼포먼스 1회차
2026.6.19. Fri 18:00
퍼포먼스 2회차
2026.6.20. Sat 13:00
〈 행사 〉
오프닝 리셉션 & 라이브 디제잉
DJ 유노송
2026.6.15. Mon 17:00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제1관 (문헌관 4층)
〈 기획 〉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전시기획팀 FLUX 614
배민성 이혜린 강민 김신 김유진 김은아 박서윤 신서영 안준태 양정원 오연서 이경민 이상익 이하나 정세빈 조은영 진서영
최민서 한수빈 한효진
프로그램

기획자 도슨트 프로그램
큐레이터들이 담당 작가의 작품 앞에서
전시를 기획하며 발견한 시선과 작업의 맥락을
직접 소개하는 도슨트 프로그램
일시
2026.6.17. Wed 17:00장소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제1관소요 시간
약 50분참여 방법
현장 참여 / 무료

관객 참여 프로그램 ‘몸짓 걸기’
일상의 몸짓을 골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 담긴 개인적 기억을 되살리는
관객 참여 프로그램
일시
2026.6.19. Fri 18:30
2026.6.20. Sat 13:30
*본 프로그램은 퍼포먼스가 끝난 후 진행됩니다.장소
홍익대학교 아트앤디자인밸리 B201-2호소요 시간
약 30분참여 방법
현장 참여 / 무료

관객 참여 프로그램 ‘Everything Dance Cam’
관람객이 카메라 앞에서 원하는 포즈를 취하면
원형 파티클 실루엣 이미지로 변환되어
저장할 수 있는 참여형 포토 프로그램
일시
2026.6.15. ~ 2026.6.20. 전시기간 내내장소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제1관소요 시간
약 1분참여 방법
현장 참여 / 무료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5초간 유지하면,
원형 파티클 실루엣 이미지로 변환되어 저장할 수 있다.
후원 및 협찬

박서보장학재단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박서보 화백이 2022년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모마 뮤지엄, 구겐하임, 퐁피두센터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박서보 화백은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들이 경제적 이유로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본 재단을 설립하였다. 현재까지 홍익대학교 순수미술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 학기 장학생을 선발하여 지원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박서보 화백이 생전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예술학과의 전시를 처음으로 후원하며 그 뜻을 함께한다.

한국문화예술센터는 예술이 특별한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운영되는 문화예술센터다. 국내 다양한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응원하며, 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소개하고 예술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트인디자인밸리 B201-2호에 위치한 공간을 제공하며 《Everything Dance Hall》과 함께한다.

테라톤은 2001년 설립되어 스피커, 헤드폰 등 다양한 음향기기를 판매해온 전문 업체이다.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축적된 음향 기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며, 이번 전시에서 음향 장비 협찬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보다 풍부한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본 전시에서는 테라톤이 협찬하는 스피커와 헤드폰을 통해 소리를 매개로 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섬광 섹션의 최지우 〈탑 탈출기〉와 칵테일 섹션의 윤대원 〈빙글-뱅굴 시리즈〉에는 테라톤이 협찬하는 스피커가 제공되며, 구두 섹션의 서혜림 〈영원했으면 하는 건 무엇인가요?〉에는 테라톤이 협찬하는 헤드폰이 제공된다. 소리가 작품의 핵심 언어로 기능하는 각 작품에서, 테라톤의 음향 장비는 관람객이 작가의 의도에 한층 깊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예정이다.

파워비뇨의학과의원은 분당 정자동에 위치한 암검진, 리줌 전문 비뇨의학과로, 대학병원 과장 교수 경력의 한준현 원장이 이끌고 있으며 이번 전시에 따뜻한 마음으로 후원에 함께 해 주었다.

(주)썬텍은 전국의 협력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태양광 발전소의 유지보수와 안전관리를 지원하는 전문 기업이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환경과 안전한 현장 운영을 위해 노력하며 친환경 에너지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이번 전시에 따뜻한 마음으로 후원에 함께해 주었다.

이은혜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동문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기획자와의 인연으로 《Everything Dance Hall》에 함께하게 되었으며, 뜻깊은 자리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어 기쁘다는 말을 전해왔다. 선배 예술가로서 건네는 그 따뜻한 마음이 전시의 든든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FLUX 614
FLUX 614는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4학년 교과목 <전시기획 및 실습>을 기반으로 결성된 신진 기획자 콜렉티브입니다.
해당 교과목은 정연심 교수님의 지도 아래 매년 기획전을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그룹명 ‘FLUX 614’는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흐름을 뜻하는 ‘flux’와, 기획의 출발점이 된 홍익대학교 강의실 R614호를 결합한 이름입니다.해당 교과목은 매년 정연심 교수님의 지도 하에 미술적 담론에 대한 기획전을 개최해오고 있습니다.INSTA @practiceof.curating
EMAIL [email protected]
ARCHIVE https://practiceofcurating.carrd.co총괄 배민성 이혜린
기획 배민성(팀장), 이혜린(부팀장), 박서윤, 이상익, 최민서, 한수빈
디자인 진서영(팀장), 김은아, 신서영, 이경민
홍보 강민(팀장), 김유진, 양정원, 한효진
장비・공간 김신, 안준태, 오연서, 이하나, 정세빈, 조은영지도교수 정연심
전시 자문 정연심, 김효진

Copyright © 2026 FLUX 614
웹사이트 제작 김유진
김가진 Kajin Kim
김가진(b.1993)은 미디어에 의해 파편화된 현대인의 존재 방식과 관계의 감각을 투명한 물질과 빛을 통해 탐구한다. 그의 작업에서 빛은 형체를 드러내는 동시에 전원이 꺼지는 순간 사라지는 덧없는 매개로, 존재를 결코 고정하지 않는다.주요 연작 〈Habitable Dialogue〉(2023–2026)에서 레진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이자 접촉을 허용하는 통로로 작동하고, 〈Embedded Embrace〉(2023–2026)의 반투명한 실리콘과 라이트박스는 연결이 가능하면서도 차단된 관계의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작업 속 존재들은 중첩되거나 희미한 잔영으로 남으며, 관계가 불안정한 접촉 속에서 형성됨을 보여준다. 최근 작업인 〈Placeholder〉(2026)에서는 이러한 불안정성을 결핍이 아닌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신체의 경계는 더욱 흐릿해지고, 빛을 통과한 신체 이미지는 떠오르며 부재와 현존이 동시에 감각된다. 그 안에서도 서로를 감싸 안는 몸짓은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도 서로에게 가닿고자 하는 움직임을 드러낸다.

김가진, 〈Habitable Dialogue XVII〉, 2026, 에폭시 레진에 이미지 전사, 조명, 88 × 100 × 0.3 cm

김가진, 〈Embedded Embrace V〉, 2026, 실리콘, 열성형 아크릴, LED 조명, 39 × 45 × 15 cm

김가진, 〈Placeholder I〉, 2026, 투명 필름에 인쇄, 열성형 아크릴, 조명, 29 × 19 × 8 cm
김다솔 Kim Dasol
김다솔(b.1995)은 일상의 몸짓을 여러 기록 방식으로 수집하고, 이를 다양한 매체로 번안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몸짓을 삶의 습관이 배어 있는 신체의 흔적으로 이해하는 한편, 이를 고유의 조형 언어로 독해한다.그의 작업은 타인의 몸짓을 스캐닝과 프로파일링 등의 방식으로 ‘기록’ 하고, 이를 회화, 도자, 소프트 조각 등의 매체로 ‘번안’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Painting Choreography〉(2025)는 타인의 몸짓을 안무 기보법의 체계를 참조한 회화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그리고 〈무성생식〉시리즈(2023)는 몸짓을 스캐너를 통해 채집한 뒤, 뒤집힌 도자와 결합하여 하나의 생명체적 형상으로 출현시킨 작업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차와 어긋남은 타인에게 가닿으려는 불완전한 시도의 흔적으로 남는다. 한편〈Sewing service〉시리즈(2026)에서는 삶과 노동의 몸짓을 보조하는 ‘조형적 생존 도구’를 통해, 창작과 삶의 수평적 관계를 탐색한다.

김다솔, 〈Cadence(Statically)〉,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2 × 130.3 cm
김다솔, 〈Cadence(Actively)〉,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2 × 130.3 cm
김다솔, 〈Cadence(Upside Down)〉,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2 × 130.3 cm

김다솔, 〈주마간산〉, 2023, 펄프지에 레이저 프린트, 도자에 유약, 38 x 35 x 31 cm

김다솔, 〈멀리 있는 손님에게 다가서는 방법〉, 2026, 펠트, 퀼팅 실, 지지미 천, 백자토, 유성펜, 가변설치

김다솔, 〈하나를 완벽하게 건네는 방법〉, 2026, 펠트, 퀼팅 실, 지지미 천, 92.5 × 47 × 17 cm
신상준 Shin Sangjun
신상준(b.1999)은 아크릴과 수채로 그린 이미지 위에 한지를 배접하며 층을 쌓는다. 한지는 색과 형상을 흐리게 하며 이미지와 관람자 사이에 불투명한 막을 형성한다. 그의 화면에서 형상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멀리서 바라볼 때 흐릿한 실루엣을 드러낸다.〈오르막-광장〉, 〈언덕-성루〉, 〈옥상-성루〉(2026)는 그가 마주하였던 게임 속 화면과 고향의 풍경을 경유해 방랑의 서사를 이룬 반면, 신작 〈방파〉(2026) 에서 장소는 더 이상 확인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는 특정한 공간을 재현하기보다, 서로 다른 면과 흔적들이 얽힌 화면 위에 각자의 이야기가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다.관람자는 불투명한 장면 앞에서 무엇이 그려진 것인지 확인하기보다, 흐려진 경계와 번짐 사이를 짐작하게 된다. 도달점을 잃은 시선은 표면 위를 유랑하고, 화면 속 흔적들은 모호한 기억과 감각을 불러내며 이미지 안쪽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이러한 시각적 부유를 통해, 안착하지 못한 채 세계를 감각하고 자리를 찾아 헤매는 방랑의 궤적에 주목한다.

신상준, 〈옥상-성루〉, 2026, 캔버스에 종이, 수채물감, 아크릴릭, 90.9 × 72.5 cm

신상준, 〈오르막-광장〉, 2026, 캔버스에 종이, 수채물감, 아크릴릭, 90.9 × 72.5 cm
정들돌 Duldol Jeong
정들돌(b.2001)은 대상을 다각도에서 바라보며, 서로 어긋나는 감각의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종이, 석고, 마스킹 테이프 등 다양한 물성을 활용해 작가만의 회백색 언어로 풀어내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질감의 층위가 축적된 종이벽을 세운다. 그는 검은색과 흰색(검정과 하양)의 이분법이 아닌 그 사이에 놓인 회색 스펙트럼에 주목하며, 이를 하나의 태도로 삼아 규정 이전의 감각을 머무르게 한다.〈Hallo שלום مرحبا〉는 (2024-2025)는 온전히 해석되지 않는 시와 외국어 등을 겹쳐 얹은 종이벽으로, 흐릿한 표면 사이로 의미가 흩어지는 풍경(화면)을 제시한다. 그는 파편화된 의미를 하나로 통합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어긋난 상태를 작업의 구조로 유지한다. 이러한 구조는 고정된 의미를 거부하며 다양한 감각이 공존할 가능성을 제시하는 동시에, 제도적 해석의 틀과 지속적인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정들돌, 〈Hallo שלום مرحبا〉, 2024 – 2025, 혼합 종이(닥종이, 한지, 마분지 등), 흑연, 화이트젯소, 겔, 페이스트, 210 × 197 × 1 cm
©정들돌 Duldol Jeong

정들돌, 〈you are a picky eater but polyphagia. 너는 편식가, 그러나 잡식성이다.〉, 2025, 혼합 종이, 흑연, 화이트젯소, 겔, 페이스트, 188 × 142 × 1cm
©정들돌 Duldol Jeong (클로즈업 이미지)

정들돌, 〈I am a picky eater but polyphagia. 나는 편식가, 그러나 잡식성이다.〉, 2024, 혼합종이, 흑연, 유화, 먹물, 색연필, 103 × 118 cm
©박도현 Dohyun Park
최지우 Choi Jiwoo
최지우(b.2001)의 작업은 ‘두 다리는 지구 내핵에, 머리는 우주 끝에 닿아 팽팽하게 고정된 상태’라는 내면의 상상에서 출발한다. 그는 어디에도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는 불완전한 상태를 길고 뾰족하게 늘어진 형상으로 풀어낸다. 이 형상들은 안정을 갈구하면서도 끝내 어디에도 닿지 못해 미완으로 남겨진 존재들이다. 그 뾰족한 실루엣 안에는 외부 세계에 깎여나가면서도 이 세계에 자신을 고정시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현대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이번 신작 〈탑〉(2026)과 〈탑 탈출기〉(2026)에서 그는 이 형상을 '탑'으로 확장한다. 탑은 불안 속에서 간절히 쌓아 올린 소망의 형상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공간은 주체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탑을 벗어나려 하지만 탈출하지 못한 채 그 안을 맴돈다. 시지프가 결국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처럼, 탈출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인물들의 모습은 부조리한 현실을 끈질기게 버텨내는 우리 자신의 초상이다.

최지우, 〈탑 탈출기〉, 202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3:00, 반복 재생

최지우, 〈펼쳐진 세상〉, 2026, 하네뮬레 종이 위에 에칭, 아쿼틴트, 50 × 70 cm

최지우, 〈계속 자라난 3〉, 2024, B.F.K 판화지에 에칭, 아쿼틴트, 120 × 80 cm
김재우 Jaewoo Kim
김재우(b.1994)는 난독이라는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언어로 전부 설명되지 않는 불완전한 경험을 다매체로 풀어낸다. 인쇄물, 책, 사진 등을 활용하며, 문자와 세계 사이의 연결이 미끄러지거나 지연되는 경험에 주목한다. 글자는 서로 충돌하며 논리적인 구조에서 탈피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이해되지 않음’ 자체를 경험하게 한다.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읽기 위한 염색체〉(2022–2024)는 책 형태의 상자 안에 알파벳이 새겨진 나무 블록과 염색체 그림을 배치한 작품이다. 관람자는 펼쳐진 책을 보았을 때 쉽게 이해 가능한 문자들의 조합을 기대하지만, 작품은 그러한 기대를 비튼다. 읽혀야 할 문자는 파편적으로 제시되며 어긋나는 의미들을 산출한다. 또한 ‘GENETIC DISORDER’ 아래 놓인 염색체는 난독을 신경학적 차원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이며, 나아가 관람자로 하여금 읽히지 않는 감각을 함께 경험해보도록 초대한다. 결국 김재우의 작업은 익숙한 읽기의 방식에서 잠시 벗어나, 읽기와 이해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틈을 환기한다.

김재우, 〈읽기 위한 염색체〉, 2022 – 2024, 혼합재료, 가변크기
©김재우 Jaewoo Kim

김재우, 〈△□○ 신문〉, 2024, 신문에 콜라주, 50 x 70 cm (4EA)
©김재우 Jaewoo Kim

김재우, 〈△□○ 신문〉, 2024, 신문에 콜라주, 50 x 70 cm (4EA)
©김재우 Jaewoo Kim
듀킴 Dew Kim
듀킴(b.1985)은 종교, 퀴어성, BDSM, 대중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몸이 숭배되고 소진되는 방식을 탐구한다. 목사의 자녀이자 퀴어로 살아오며 마주한 감각에서 출발해, 신성함과 욕망 사이를 오가는 긴장을 조각과 설치, 영상 작업으로 풀어낸다.〈환호는 첫 번째 상처를 남겼다〉(2025)에서 뒤틀리고 꺾인 마이크 스탠드는 군중의 열광 속에서 복종과 침묵의 자세로 기울어지고, 이는 몸과 권력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이를 마주보는 작품 〈열광하고, 내리치고, 기도하라〉(2025)는 팬의 응원봉을 집착으로 변한 헌신의 흔적으로 치환하며, 공연장의 열광과 종교적 제의가 맞물린다.〈Just an Encore〉(2025) 연작에서는 렌티큘러의 시차 효과를 사용해, 아이돌의 몸과 종교적 희생양의 이미지를 불안정하게 교차시킨다. 여기서 환호성 속 무대는 군중의 요구 속에서 한 몸이 반복해서 바쳐지는 제단에 가까워진다. 듀킴은 이러한 환호와 상처 사이에도 끝내 다시 움직이고 노래할 수밖에 없는 몸의 아이러니한 리듬을 포착한다.

듀킴, 〈열광하고, 내리치고, 기도하라〉, 2025, 스테인리스 스틸, 블로운 유리, 소나무, 황동에 화이트 골드 도금, 비즈, 혼합재료, 100 × 30 × 103 cm

듀킴, 〈Soft Where the Stem Snapped〉,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주조 유리, 금속 체인, 혼합재료, 30 × 35 × 60 cm

듀킴, 〈No Messiah—Just an Encore〉, 2025, 렌티큘러 인쇄, 스테인리스 스틸, 37 × 56.5 × 6 cm
서혜림 Suh Hyerim
서혜림(b.1985)은 영상을 주된 매체로 삼아 사적인 사건들을 기록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9년간 언론사 기자로 활동하며 익힌 현장의 시선은 작업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있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러 직접 발로 뛰는 방식은 저널리즘의 문법을 닮아있지만, 카메라로 포착하려는 것은 사건의 전말이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현실 앞에 선 인간의 내밀한 반응이다.〈영원했으면 하는 건 무엇인가요?〉(2024) 다큐멘터리는 재개발로 인해 그가 운영한 예술공간 '가삼로지을'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퇴거 이후 그 곳을 마주하지 못했던 그는 펜팔 친구 하나에게 이 일을 설명하기 위해 용기를 내 다시 카메라를 들고 그곳을 찾는다.그는 사라져가는 공간 앞에서 저항보다 기억을 택한다. 건물에 남겨진 종이별로 단어를 적어내린 행위는 사라질 장소에서 다시 이어지는 작은 의식이자, 작별 방식이 된다. 거대한 흐름 속 세상을 바꾸려는 개인의 거창한 몸짓은 아니지만, 보는 이의 내면에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서혜림, 〈영원했으면 하는 건 무엇인가요?〉, 2024, 다큐멘터리, 컬러, 사운드, 00:30:00
손예인 Yein Son
손예인(b.2000)은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회화를 오가며 움직임이 남기는 궤적을 따라간다. 그 형상은 작가가 직접 뜬 종이 위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펼쳐지고 접히며 새로운 이야기가 생성된다. 그는 춤의 동작을 받아 적듯 인체의 움직임을 한 동작씩 따라가며 기록하고, 몸이 지나간 길과 그 둘레의 공간이 종이 위에서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여러 지점에서 진입할 수 있는 큰 화면 앞에서 관람자는 종이 한 모퉁이에서 출발해 궤적을 더듬더듬 따라 읽어간다.손예인이 따라가는 움직임은 두 결로 나뉜다. 〈Border〉(2026)처럼 한 사람의 발걸음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인간의 한계와 경계 끝을 향해 가기도 하고, 철새 연작처럼 무리의 새들이 지면의 허락 없이 시차와 하늘의 경계를 넘어 날아오르기도 한다. 이 움직임은 화면에 자국을 새기며 흔적과 정체성을 남기는 과정으로 놓인다. 흔들리는 무대 위에서도 멈추지 않는 발의 박자가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몸의 리듬으로 이어지며 화면 안에서 펼쳐진다.

손예인, 〈웅웅거리는 회색 밤이 들린다〉, 2025, 한지 위에 과슈, 조개껍데기 가루, 흑연, 오일, 600 × 210 cm

손예인, 〈떠오르는 밤〉, 철새 시리즈, 2026, 제작 종이 위에 오일,과슈,먹,흑연,조개껍데기 가루, 27.5 × 22.5 cm

손예인, 〈설야〉, 2026, 철새 시리즈, 제작 종이 위에 오일,과슈,먹,흑연,조개껍데기 가루, 27.5 × 22.5 cm
신종찬 Shin Jongchan
신종찬은

신종찬, 〈둘이 모여 하나〉, 2025, 한지, 숯, 먹, 스테인레스, 39.4 × 68.2 × 14 cm
이가은 Gaeun LEE
이가은(b.2002)은 신체가 세계와 맞닿는 순간을 퍼포먼스로 탐구하고 그 과정을 기록한다. 그는 발목 부상과 재활의 과정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된 몸을 세계와 자신을 연결하는 통로로 재인식하며, 불안정한 움직임과 그 흔적을 작업의 중심에 놓는다.실내 퍼포먼스 〈어떤 것은 언제나 불충분하다〉(2024)는 수술 이후에도 왼쪽으로 기울어진 채 살아가는 감각을 드러낸다. 기울어진 판 위에서 균형을 붙잡으려는 긴장과 사투는 몸에 부착된 연필심을 통해 흔적을 남긴다.실외 퍼포먼스 〈땅 위에서 비스듬하게〉(2025)는 그 이후의 시간을 비춘다. 그는 불완전한 신체를 매개로 다양한 장소에서 바닥과 흙, 주변 사물과 즉흥적으로 접촉하며, 세상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감각을 선보인다.그의 움직임은 부상 이전의 ‘정상적인’ 몸으로 회복하려는 시도라기보다 변형된 신체와 함께 새로운 리듬을 익혀가는 과정이다. 불안정한 균형과 치우친 자세, 바닥과의 접촉은 결함이라기보다 세계와 관계 맺는 또 다른 방식이 되는 것이다.

이가은, 〈어떤 것은 언제나 불충분하다〉, 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00:02:15

이가은, 〈땅 위에서 비스듬하게〉, 2025, 4K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00:02:15

이가은, 〈‘어떤 것은 언제나 불충분하다’ 퍼포먼스 기록물〉, 2024, 종이에 연필심, 148.0 × 79.5 cm

이가은, 〈040723〉, 2024, 종이책, p.71, 14.8 × 21.0 cm
안진선 JIN SEON AHN
안진선(b.1996)은 도시에서 감지되는 미묘한 불안과 진동이 공간 인식과 신체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이는 건축 구조물과 일상의 재료를 기반으로 한 조각적 상황으로 연출되며, 관람자로 하여금 익숙했던 도시의 균형을 의심하고 공간의 물리적 안정성을 고찰하도록 이끈다.전시장은 이를 감각하는 두 갈래의 지형으로 구분된다. 〈책장〉(2025), 〈서랍장〉(2025), 〈함석 닥트〉(2025)는 사물의 일상적 기능이 정지된 날것의 물성과 구조를 전면으로 드러내며, 도심 속 요소를 전시장 안으로 전유하여 낯선 긴장을 형성한다. 반대편의 〈접고 펼치는 흔적〉(2025), 〈고가다리〉(2023), 〈도시 모형 실험〉(2024)에는 방문자의 몸짓과 작가의 다각적 시점이 스며있다. 결속과 이완, 견고함과 임시성이 공존하는 지형에서 관람자는 능동적으로 개입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 맺는다. 이 과정에서 불안은 더이상 부정이 아닌 하나의 상태로서 자리하며, 신체를 경유한 진동은 이내 저마다의 움직임을 지속해 나간다.

안진선, 〈책장〉, 2025, 무늬가 있는 합판, 우드스테인, 목공용 물감, 190 × 40 × 60 cm
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고정균

안진선, 〈함석 닥트〉, 2025, 함석, 180 × 50 × 70 cm
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고정균

안진선, 〈접고 펼치는 흔적〉, 2025, 자작나무 합판, 경첩, 바퀴, 흔적을 만드는 생활 용품, 가변크기(75 x 25 x 180 cm)
©서남예술촌

안진선, 〈도시 모형 실험〉, 2024, 혼합재료, 벽면 선반 위 가변설치
©서울시립미술관
윤대원 Yun Daewon
윤대원(b.1993)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신체와 디지털 환경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변이를 탐구한다. 춤과 움직임에 대한 오랜 관심을 출발점으로, 그는 비디오·퍼포먼스·인터랙티브 매체를 넘나들며 가상의 몸짓과 비접촉의 경험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감각 조건을 실험해왔다. 그에게 신체란 매개와 변환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형태를 달리하는 과정 그 자체이며, 그는 그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신체의 상태 안에서 지각과 관계의 가능성이 어떻게 열릴 수 있는지를 묻는다.〈for Daniel Linehan〉(2023)은 빠르게 회전하는 자신의 몸을 담은 영상과, 그 동작을 분절한 영상으로 구성된 2채널 작업이다. 통제하기 힘든 속도로 돌아가는 몸은 디지털 화면 속에서 점차 온전한 윤곽을 잃고 움직임의 흔적과 잔상만을 남긴다. 그는 자기 몸을 가장 가까운 출발점으로 삼아 그것을 매체 안에서 증폭하고 분열시키는데, 이는 몸이 이미지로 환원되는 과정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그 해체를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본질을 마주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신체의 물리적 조건과 디지털 매체의 변환 사이에서, 지각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탐색한다.

윤대원, 〈for Daniel Linehan〉, 2023, 16/9(3840x2160), 00:06:30, 퍼포먼스, 2채널 비디오

윤대원, 〈빙글-뱅굴 시리즈〉, 2023, 9/16(1080x1920), 퍼포먼스,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윤대원, 〈빙글-뱅굴 시리즈〉, 2023, 9/16(1080x1920), 퍼포먼스,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